안녕하세요. 나미팍입니다.
쌍둥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.
두 아이가 동시에 울거나, 동시에 안기고 싶어 할 때입니다.
그럴 때마다 엄마의 몸은 하나인데, 아이들의 마음은 동시에 두 방향으로 향해 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느끼게 됩니다.
둘을 동시에 안을 수 없는 현실
한 아이를 먼저 안는 순간, 다른 아이의 울음이 바로 옆에서 들려옵니다.
이미 품에 안긴 아이는 꼭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하고,
바닥에 있는 아이는 점점 더 큰 소리로 엄마를 부릅니다.
누구를 먼저 선택한 것도 아닌데,
괜히 선택을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마음이 드는 순간입니다.
쌍둥이 육아에서 ‘동시에’라는 말은 늘 이상적인 목표처럼 느껴집니다.
같은 시간에 먹이고, 같은 시간에 재우고, 같은 만큼 안아주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그 균형이 자주 어긋납니다.
한 아이를 안고 있어도 마음은 나뉘어 있습니다
한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계속 다른 아이에게 가 있습니다.
지금 울고 있는 저 아이는 얼마나 답답할지,
내가 외면하고 있다고 느끼지는 않을지.
안아주지 못한 시간이 길어질수록
미안함은 자연스럽게 마음 한쪽에 쌓입니다.
특히 아가드의 목욕 시간이나 졸림과 배고픔이 동시에 찾아오는 저녁에는
두 아이가 동시에 안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.
시터 선생님이 목욕물을 준비하는 동안, 두 아이를 달래는 역할은 온전히 제 몫이 됩니다.
하지만 아이들이 점점 커갈수록 동시에 안아주는 일은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집니다.
이럴 경우 목소리가 더 크고 많이 우는 아가 먼저 안아줄 수 밖에 없습니다.
쌍둥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이 ‘공평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아 힘들다’는 감정을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겁니다.
저 역시 늘 미안함을 안고 육아를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.
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건,
이 감정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
오히려 둘 다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이었습니다.
사랑은 반드시 같은 순간, 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.
쌍둥이 육아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현실
쌍둥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들의 울음에 조금은 무뎌져야 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.
지금 한 아이를 안아주지 못한다고 해서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,
잠깐 기다리게 된다고 해서 마음이 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.
한 아이의 필요를 먼저 채워주고, 그 다음에 다른 아이를 안아주는 순간
아이의 몸이 서서히 풀리며 안도하는 느낌이 전해질 때, 그제야 저 역시 숨을 고르게 됩니다.
함께 자라는 엄마의 마음
예전에는 둘을 동시에 안지 못하는 상황이 엄마로서 부족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.
동시에 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습니다.
하지만 이제는 이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
쌍둥이 육아의 중요한 일부라는 걸 배워가고 있습니다.
완벽하게 나누지 못해도,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
엄마의 역할은 충분하다는 말을 조금씩 스스로에게 해주고 있습니다.
이전에 잠이 든 아가들이 동시에 깨서 운 적이 있었는데 컨트롤 안되는 아가들을 장난감으로 겨우 달래고 한명씩 안아주며 큰 고비를 넘긴 적이 있습니다.
동시에 한꺼번에 안으려다가 결국 동시에 안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한명씩 안아줬던 건데,
시간이 지나며 아이들도 엄마가 동시에 안아줄 수 없음을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.
그리곤 다시 평화를 되찾고 잠에 빠져들었습니다.
이후로 나 혼자 뿌듯해하며 주변 여기저기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.
아마도 이 시기에 조금씩 내려놓게 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.
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
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‘나도 늘 한 아이를 더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’고 느끼고 있다면,
그 마음 자체가 이미 깊은 사랑이라는 걸 전하고 싶습니다.
쌍둥이 육아는 둘을 똑같이 안아주는 일이 아니라,
각자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과정이라는 걸 오늘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깁니다.
오늘도 둘을 동시에 안을 수는 없겠지만,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려 합니다.
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라고 생각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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