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쌍둥이 아가 둘을 동시에 안을 수 없을 때 드는 마음

by 나미팍 2026. 4. 23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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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녕하세요. 나미팍입니다.

쌍둥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.

두 아이가 동시에 울거나, 동시에 안기고 싶어 할 때입니다.

그럴 때마다 엄마의 몸은 하나인데 손은 두 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또렷하게 실감하게 됩니다.

둘을 동시에 안을 수 없는 현실

한 아이를 먼저 안는 순간 다른 아이의 울음이 바로 옆에서 들려옵니다.

이미 품에 안긴 아이는 꼭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하고, 바닥에 있는 아이는 점점 더 큰 소리로 엄마를 부릅니다.

그 사이에서 나는 누구를 먼저 선택한 것도 아닌데 괜히 선택을 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곤 합니다.

 

쌍둥이 육아에서 ‘동시에’라는 말은 늘 이상적인 목표처럼 느껴집니다.

같은 시간에 먹이고, 같은 시간에 재우고, 같은 만큼 안아주고 싶지만 현실은 늘 어긋납니다.

그래서 둘을 동시에 안을 수 없는 이 상황은 육체적인 한계이자 마음의 부담으로 남습니다.

 

한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계속 다른 아이에게 가 있습니다.

지금 울고 있는 저 아이는 얼마나 답답할지, 내가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는 않을지. 안아주지 못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안함은 더 커집니다.

 

우리 아가들은 목욕을 할 때 졸려움과 배고픔이 동시에 올 때 가장 많이 울고 또 안기고 싶어 합니다.

시터 선생님은 목욕물을 받으러 가시고 동시에 안아달라는 아가들을 달래고 있는 건 제 몫입니다.

하지만 동시에 안기에는 이제 아가들도 많이 커서 힘들고 달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. 

이럴 경우 더 많이 울고 목소리가 큰 아가부터 안아줄 수밖에 없습니다.

 

쌍둥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이 공평하게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아 힘들다는 감정을 경험한다고 합니다.

저 역시 항상 미안함을 안고 육아를 하는 느낌이 듭니다.

하지만 이 감정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둘 다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라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.

 

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건 사랑은 반드시 같은 순간 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.

그리고 쌍둥이를 키우면 어쩔 수 없이 아가들의 울음에 조금은 무뎌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. 

 

지금 한 아가를 안아주지 못한다고 해서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잠깐 기다리게 된다고 해서 마음이 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.

한 아이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난 후 다른 아이를 꼭 안아주는 순간 아이의 몸이 서서히 풀리며 안도하는 느낌이 전해질 때 비로소 나 역시 숨을 고르게 됩니다.

함께 자라는 엄마의 마음

예전에는 둘을 동시에 안지 못하는 이 상황이 엄마로서 부족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.

하다못해 동시에 울 때 울음을 그치게 하지 못할 경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습니다.

 

어쩌면 아가들을 위한 소리 나는 장난감을 많이 산 이유도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서였을지도 모릅니다.

아가들이 조금 더 어렸을 적 동시에 잠에서 깨서 운 적이 있었는데 컨트롤이 안 되는 아가들을 장난감으로 달래고 한 명씩 안아주며 큰 고비를 넘겼던 경험이 있습니다.

 

하지만 이제는 이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쌍둥이 육아의 중요한 일부라는 걸 배워가고 있습니다.

완벽하게 나누지 못해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의 역할은 충분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조금씩 말해주고 있습니다.

아가들에게도 조금씩 이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.

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

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‘나도 늘 한 아이를 더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’고 느끼고 있다면 그 마음 자체가 이미 깊은 사랑이라는 걸 전하고 싶습니다.

쌍둥이 육아는 둘을 똑같이 안아주는 일이 아니라

각자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과정이라는 걸 오늘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봅니다.

오늘도 둘을 동시에 안을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려 합니다.

그걸로 충분한 하루라고 말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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