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쌍둥이를 키우며 ‘공평함’을 다시 정의하게 된 이유

by 나미팍 2026. 4. 24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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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녕하세요. 나미팍입니다.

쌍둥이를 키우다 보니 예전에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.


바로 ‘공평함’입니다.

 

아가를 키우기 전에는 공평하다는 말이 꽤 단순하게 느껴졌습니다.
똑같이 나누고, 같은 만큼 주고, 같은 시간에 안아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.

하지만 쌍둥이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이 단어는 점점 복잡해졌습니다.

 

두 아가는 같은 날 태어났지만, 같은 순간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.

한 아가는 배가 고프고,
다른 한 아가는 졸리고,
한 아가는 안기고 싶고,
다른 한 아가는 혼자 놀고 싶어 합니다.

 

같은 시간, 같은 공간에 있어도 아가들이 원하는 것은 늘 조금씩 다릅니다.

그래서 똑같이 해주려는 시도는 생각보다 자주 어긋납니다.

공평하려다 흔들리던 시간

처음에는 최대한 공평하게 하려고 애썼습니다.

저 역시 쌍둥이인데, 항상 언니와 '내 것'과 '내 것이 아닌 것'을 명확히 했고 공평히 받지 않으면 그 부분에 대해 불만이 생기기도 했기 때문입니다.

 

그래서 아가들 역시 공평하게 대해주길 바란다고 생각했습니다.

만약 한 아가를 안아주면 마음속으로 시간을 재듯 “이제 다음은 너야”라고 생각했고 간식 하나를 주더라도 크기와 순서를 맞추려고 애를 썼습니다.

밥을 먹일 때도 세수를 시키거나 옷을 입힐 때 모두 공평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습니다.

 

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마음은 더 바빠졌습니다.

지금 이 선택이 다른 아가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을지 혹시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아가를 더 챙기고 있는 건 아닐지 계속해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.

공평함을 지키려는 마음이 오히려 저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압박했습니다.

공평함은 ‘같음’이 아님

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된 건 공평함은 모든 것을 똑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.

 

지금 더 필요한 아가에게 먼저 반응해 주는 것,
기다려야 하는 아가에게는 말과 눈빛으로 설명해 주는 것,
그리고 나중에 꼭 그 아가를 안아주는 것.

 

그 모든 과정이 모여 각자에게 필요한 사랑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.

두 아가들에게 같은 순간이 아니라도 혹은 같은 방식이 아니라도 결국은 놓치지 않고 돌아오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
기다림을 배우는 아가들, 내려놓음을 배우는 엄마

쌍둥이 육아를 하며 아가들만 자라는 건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.

이 순간들 속에서 아가들은 알게 모르게 기다림을 배우고 저는 완벽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.

모든 순간을 공평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아가들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.

물론 완전한 공평함을 지키지 못한 하루라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나중에 다시 돌아보면 그 안에는 나름의 균형이 있었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됩니다.

 

그래서 누군가 혹시 지금 ‘나는 왜 이렇게 한 아이를 더 기다리게 할까’라며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다면 그 마음부터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.

 

쌍둥이 육아에서의 공평함은 완벽한 분배가 아니라 끝까지 기다리면 돌아오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.

아가들도 어리고 말도 못 하지만 결국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.

 

오늘도 내일도 아가들을 동시에 만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각자의 순간을 외면하지 않으려 애썼다면 그 하루는 충분히 잘 해낸 하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.

쌍둥이를 키우며 저는 오늘도 ‘공평함’의 의미를 조금씩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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